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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2006년 01월 08일] 중앙문화 활동 중에 썼던 발제문 (1)

사학법 개정안과 사학단체의 횡포에 대한 나의 생각

오늘 뉴스에서 빨간 확성기를 들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한 할아버지를 보았다. 정장차림에 반듯한 머리를 한 할아버지는 외관상 신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은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학부모에게 소리를 꽥꽥 지르며 난리를 쳤다. 사학재단의 횡포에 맞서 마이크를 든 한 학부모를 저지하려 이리저리 날뛰었다. TV속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사학법 개정안에 맞서 사학재단에서 신입생 입학을 받지 않겠다는 발표가 뉴스로 보도되었다. 도대체 사학법 개정안의 골자가 무엇이길래 학생들의 진학을 막겠다는 것인가. 궁금해서 네이버를 찾아보았다.

 

사학법 수정안 주요내용

구분

주요 내용

개방형 이사제 도입

이사 정수의 1/4이상을 외부인사로 선임

학교장 겸직 금지

이사장 친족의 학교장 겸직 금지

감사 강화

감사 1인을 학교운영위에서 추천, 회계, 예결산 공시 의무화

이사회 친인척 비율

현행 1/3에서 1/4로 축소

 

 

전부터 비공개로 진행되는 학교운영에 의해서 사학에 대한 비리가 빈번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학법 개정으로 인해 학교운영이 좀 더 투명해 질 수 있다면, 사학은 국민들에게 더 당당하고 깨끗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대하는 것인가? 전교조에 반발하여? 힘의 논리에서 굴복하지 않기 위해? 간섭 없는 효율적인 학사운영을 위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한 한나라당 의원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이번 날치기의 속 뜻은 전국 사학에 이들 세력을 개방형 이사로 침투시켜, 초중고교까지 불순한 좌파 이념과 사상을 교육하기 위한 악의적 의도이다." 할말이 없어진다. 혹시나 한국사를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저런 어처구니 없는 말에 동조를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뿐이다.

 

오늘 세미나에서 나왔던 논의 중, 보수와 진보, 그리고 무상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교육을 담보로 자본을 뜯어내는 사학재단의 보수적인 행태는 오늘 세미나에서 나온 언어를 대변하기에 적당하다. 언제적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교육의 대부분이 사학에서 이루어진다.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서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사학에게 교육을 맡기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 교육의 기관을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사학의 모습이라니.

 

많은 시일이 걸릴지라도 지금의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이미 북유럽이나 몇몇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무상교육 제도는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제도라고 생각한다.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나라가 교육조차 자본에 휘둘려 평등하게 받지 못한다면 어불성설이 아닌가. 더군다나 교육기관을 쥐고 있는 기득권의 보수적인 행태가 계속된다면, 교육은 이미 의무가 아니라 기득권의 물신을 채우기 위한 상품과 다름없다.

 

보수는 변하지 않는다. 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학사운영에서 불합리한 인사 조치나 횡령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해도, 빌어먹을 사학 기득권 층이 손해 보는 것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제도권을 이탈하려 하지 않는다. 진보가 사회에서 왜 필요한가? 바로 이런 소수의 밥그릇을 뒤집어 엎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밥을 나눠 먹기 위해서 필요하다. 80년 전두환을 필두로 한 ‘하나회’ 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권력유지를 위해 사람들을 억압하였을 때, 시민들은 88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인권을 되찾았다. 역사는 항상 기득권에 대한 다수의 혁명에 의해서 진보한다. 물론 기득권 세력이 그 외의 세력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변화의 모습을 갖는다면, 그래서 그것이 모두의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보수는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사학의 모습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교육이라는 공공의 권리를 두고 자기들끼리의 밀실을 만들어 놓은, 다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밀실을 지키려 하는 그들의 행동은 타협을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