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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2006년 01월 13일] 중앙문화 활동 중에 썼던 발제문 (5)

대한민국 군대와 한국사회(1)

※ 이 글은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의 겨울 세미나 발제 내용 입니다. 

저번시간 ‘전쟁과 세계’라는 세미나를 통해서 전쟁과 폭력, 인권, 그리고 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유야 어쨌든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의 목적을 부여한 자들이 죽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주변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생명들을 바라볼 때 더욱 안타깝습니다. 군 위안부 문제만해도 그렇습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화가 많은 여성들의 삶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런 끔찍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입장을 바꿔서, 우리나라 역시 베트남전쟁에서 같은 과오를 범하지는 않았을까요. 전시에는 법이 없고 오로지 총과 폭력, 살인과 희생만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No War’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전쟁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이기심이 평화를 질투하는지, 전쟁의 역사는 계속 쓰여져 왔고 앞으로도 수 많은 전쟁의 불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오늘 이 시간이 평화로운 세상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가르쳐야 하는 군대

“야 건영아, 너 군대 안 가냐?”
“나 군대 가기 싫은데.”
“야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와야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켜야 될 꺼 아니냐.”

국방의 의무, 초등학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참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내가 나라를 지켜야 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평온하게 살 수 있다라는 논리가 머리 속에 세뇌되어 버렸습니다. 하긴 맞는 말입니다. 누군가 이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막강한 군사력을 토대로 북한이, 또는 미국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평화적 의식이 신장하였다고 해도, 이라크 폭격을 대놓고 TV로 보여주는 세상인데 뭔들 무슨 일이 안 일어나겠습니까? 적어도 다른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은 필요합니다. 때문에 너도 나도 의무적으로 징병 통보를 받게 되고 군 입대를 하는 것이겠지요. (아니라고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청년들은 나라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적과 싸우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적을 죽이기 위해 총 쏘는 법과 수류탄 던지는 법을 배우며,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Top-Bottom의 지시체계와 명령복종을 배웁니다. 한마디로 전쟁을 익힌다는 것이지요. 폭력을 익힌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적을 살상하는 훈련은 폭력을 행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군대는 참 모순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배우는 곳이니까요.

권위주의로부터의 폭력의 전도

이등병은 상관의 군화에 매일같이 물광을 내 갖다 바치는 것이 당연하고 고참은 신참 팬티를 뺏어 입어도 당당할 수 있다.

적을 살상하는 것을 넘어서, 폭력은 권위주의와 지시체계에서도 통용됩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구타와 욕설은 군대 내에서 존재합니다. 흔히 쓰는 말로 “갈군다” 라고 하는 군대 내의 폭력은 그 정도에 따라 인간을 자살로까지 몰고 갑니다. 


실제로 육군 안에서 일어난 사망사고는 1980년 518명에서 1990년 404명, 2000년 147명, 지난해에는 102명으로 줄었다. 자살사고는 1990년 101명이던 것이 2004년에는 53명으로 줄었다. 군은 이런 사망사고율과 자살사고율이 민간 사회보다 크게 낮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 자살사고의 경우 복무부적응이나 업무부담 등 군대에 원인이 있는 자살은 줄어들고, 가정환경이나 연애문제, 신병비관 등 개인의 문제에 원인이 있는 자살이 늘고 있다고 육군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민간 전문가의 시각은 상당히 다르다.

용범 박사는 “군인은 이미 인성검사를 통해 정신이상자가 걸러졌기 때문에 사고율을 민간 사회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군대는 이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이 자살사고 등을 일으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감시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지 자살유인 자체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박사는 육군이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인 문제 등 군대 외부에 있는 것으로 볼수록 자살 또는 타살사고 방지 가능성은 그만큼 멀어진다고 지적한다. 자살을 일으키는 원인을 심리학에서는 거리로 따지는데, 가장 거리가 가까운 원인이 실제로 자살을 실행하는데 결정적이다. 병사한테는 바깥 사회에 있는 애인보다 같은 내무반의 고참이 더 가까운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겨레 특별취재반

 

 

 저의 아버지 시대만 해도 군대 내에서의 구타는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군대를 다녀오셨지만, 군대에서 상관에게 명령 불복종을 하였다가 귀를 얻어 맞아서 지금까지 휴유증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제게 군대를 가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군대에 가면 그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지요. 군대에 갔다 오면 어떤 점이 성장한다는 것일까요? 가보지 않은 저로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다름입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신성한 맹종 학습의 의무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박모 선배로부터의 이야기에서 떠올려 봤습니다. “회사도 군대랑 별 다를게 없어. 군대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사회생활 역시 군대에서의 생활과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성장의 의미는 즉, 군대에서의 경험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장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갓 들어간 신참들은 온갖 너스레와 샤바샤바를 늘어 놓습니다. 군대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함이죠. 그렇게 적응하는 법을 배운 우리의 신참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도 잘 적응해 갑니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큰 발판이 되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위계질서와 명령체계에 잘 길들여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일단 군에 들어가게 되면 권력의 위계질서에 따라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맹종 학습을 강요하게 되고, 불복종 할 경우 처벌을 받거나 군내에서 따돌림을 받습니다. 불합리한 것에 대해 조차도 복종하지 않을 경우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이 체계는 정말 ‘맹종’ 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실컷 맞다가 나중에 속시원하게 실컷 때리고, 조직사회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했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할 줄도, 시킬줄도 안다.”

 

군대에서는 지위체계 아래서의 심적, 물리적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 권위를 행사하는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흔히 짬밥이 되었다고 하죠. 권력구조로 본다면 이등병과 일병의 위에 위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참의 위치에 서게 되면 그들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처벌 또한 내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군내에서의 복종과 명령을 모두 경험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2년을 합리화하기가 쉬워집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이렇게 권위주의를 잘 체득한 예비역들은 이 마인드를 사회 생활에서도 내뿜습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는 상사를 잘 받들고 신입 사원들을 엄하게 대합니다. 이런 예가 모든 예비역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2년간의 군대생활이 예비역들의 신체적, 정신적 경험에 습득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