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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2006년 01월 08일] 중앙문화 활동 중에 썼던 발제문 (2)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에요?> 라는 글을 읽고

어떤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왜 사람들은 정신 없이 새로운 것을 쫓는 거지? 새로운 유행이 나오던, 더 사양이 좋은 컴퓨터가 나오던 그렇게 쫓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걸까?”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자우림의 노래 중 “어지러워 모든게 너무 빨라 쫓아가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라는 노래가사와 ‘느림의 미학’ 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쟁과 패배, 쇠퇴와 굴욕이라는 단어 또한 머릿속을 휘젓고 다녀 도저히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오늘, 진중권씨의 <폭력>, <죽음> 이라는 글과 한국정신대연구소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에요?> 라는 글을 읽고 자연스레 이전날의 혼란스러움이 정리되었다. 사람들이 쳇바퀴 굴리듯 서로서로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 왜 새로운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문명에 목말라 하는가에 대한 대답.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붉은 여왕’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붉은 여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여왕이다. 붉은 여왕의 세계에서는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힘껏 달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전진하기 위해서는 힘껏 달려야 하는 것이다. 앨리스가 아무리 뛰어도 뒤로 쳐지자 붉은 여왕이 말한다. “그 속도로는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어. 두 배로 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뒤쳐질꺼야.”

뒤쳐진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나라는 선진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인 일제로부터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 역사가 있다. ‘군위안부’ 역시 우리가 식민지의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뒤쳐진다는 것은 그만큼 힘의 아래 지배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인권을 철저히 무시 한 채 18년간의 군부독재정치를 해왔던 박정희 정권 시대도 ‘뒤쳐짐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박정희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언론의 통제와 국민들의 의식화를 철저히 억압해왔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무지했던 국민들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이라는 국가의 병영화 정책에 편승하고 그 권력아래 18년간을 지내야 했다. 

폭력은 힘있는 자 아래서 나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일본은 식민지 나라의 여인들을 긁어모아 ‘군위안부’를 만들고 그들의 인권을 처참히 짓밟았다. 박정희는 군사적 힘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 밖에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전두환의 지식인 탄압, MS의 독과점 행태 등 권력아래 자행된 폭력의 사례는 끝이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달린다. 힘의 우위에 서기 위해, 혹은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달린다. 적어도 ‘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그들과 같은 속도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