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이야기

[2006년 01월 13일] 중앙문화 활동 중에 썼던 발제문 (3)

79년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80년 신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까지(1)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79년 10월 26일, 18년간 한 나라의 독재자로서 군림했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사실은 여러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이 사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 세미나를 준비하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었고, 독재정치를 해오다 총을 맞아 죽었다. 라는 사실이었다. 여러분은 이 당시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아마 나눠준 프린트 물을 통해서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겠지만 부디 많은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으면 한다. 왜냐면, 내가 느꼈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을 같이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뚱딴지 같은 소리는 그만하고 자 이제 본격적으로 10.26 사건과 10.26 전후의 대한민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 난지 열흘 후인 10월 26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비서실장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경호실장 차지철 등 4인과 2명의 여자(가수와 모델)가 참여한 만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재규는 신민당 놈들이 나오면 전차로 싹 깔아 뭉게버리겠다. 고 큰소리 치는 차지철과 그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박정희를 차례대로 총으로 쏴 죽였다. 왜 죽였을까?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라는 말은 김재규가 훗날 박정희를 죽인 이유로 법정에 회부되었을 때 한 말이다.

 

 

계획적 거사냐, 우발적 범행이냐?

 

궁정동 안가에서 당시 김재규는 방을 세 번이나 들락날락 했다고 한다. 세 번째 나갔을 때는 총을 가져오기 위해 50m 떨어진 별관까지 가서 총을 들고 왔다. 직무실은 연회장 2층에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같은 정황을 보았을 때 우발적 범행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발적 범행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차지철과 김재규의 엽기적 경쟁 관계이다. 비서실장 김계원의 증언을 빌리면

 

차 실장과 김 부장은 무슨 중요사안이 생기면 각하께 먼저 보고하려고 신경전을 벌였어요. 어찌 보면 교실에서 선생님을 향해 팔을 높이 쳐들고 저요, 저요 하는 식이었어요. 권력은 그렇게 치사한 일면이 있는 겁니다.

 

박정희의 교모한 책략 중의 하나인 서로가 서로를 견제케 하는 전법에 김재규와 차지철이 서있었고, 그들의 미묘한 싸움은 연회장에서 더 격해지게 된다. 차지철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박정희가 맞장구를 몇 번 쳐주자 화가 난 김재규는 우발적인 범행을 저질렀던 것 아닐까.

 

 

79년 역사적 흐름과 10.26

 

지금까지 10.26 사건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79년 시대적 흐름과 10.26을 같이 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79년은 18년 박정희 정권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YH농성과 부마민주항쟁 이다.

 

YH농성

 

1979년 8월 9일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백87명이 사기성 폐업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사 4층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YH무역은 개발독재의 특혜 아래서 성장한 전형적인 수출의존형 기업이었다. 참고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회사는 경영진의 파렴치한 외화 도피와 자금 횡령, 부실 경영으로 인해 빛더미에 앉고 폐업에 이르렀다. YH무역에서 일하던 여공들은 신민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하게 된다. 하지만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사복 경찰들과 기동경찰 수백명이 신민당사에 들이닥쳐 노동자들을 곤봉으로 구타하고 당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른바 101호 작전으로 이 와중에 여공 중에 한명이었던 김경숙이 건물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8월 13일 박정권은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 3명을 사주하여 김영삼을 비롯한 총재단 전원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도록 하였다. 9월 8일 서울 민사지법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전당대회 의장 정운갑을 총재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9월 10일, 김영삼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 정권 타도를 위한 범국민적 항쟁을 선언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지 않는가. YH농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제1야당의 총재를 무력화시키려는 박정권의 파렴치한 행각에 대한 항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이후 10월 4일 김영상 의원직을 10여 분만에 변칙으로 제명시키고 이어 13일 신민당 소속 의원 66명 전원이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다. 정국이 개탄할 노릇으로 치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