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의 겨울 세미나 발제 내용 입니다.
권위주의를 양산하는 대한민국의 지배층의 음모
생각 같아서는 이렇게 권위주의와 폭력, 맹종을 일삼는 군대를 없애버리고 싶습니다. 아니, 현실적으로 돌아와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도입하여 권위주의와 폭력의 양산을 막고 싶습니다. 차라리 미국처럼 첨단 무기를 증강시키고 징병제를 점차 모병제로 전환한다면 더욱 강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한 변화가 없을까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서도 변화를 바라지 않는 군 상층부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구타가 완전히 없어질 수 없는 이유는 군대에 대한 지배층의 실제적 요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지금도 나라의 운명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한국의 보수정객과 재벌들이 요구하는 인간상은 평상시에는 ‘상전’을 위해서라면 비자금 조성이든 세금 탈루든 필요 없는 자동차 계획 추진이든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충복’이고, 유사시에는 아무런 생각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동족을 쏘아 죽일 수 있는 ‘강인한 애국자’다.
….(중략)
징병제의 존재 명분으로 보통 북한군의 남침의 위협을 드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합리화 수단에 불과하다. 남침 위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병의 사기나 전문 수준이 낮은 의무 군대보다는 기술 수준이 더 높은 모병제 군대가 위험을 방지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다. 징병제를 일종의 성역으로 만들어놓고 모병제는 물론이거니와 서구 모든 국가에 잇는 신앙에 따른 병역 거부권과 대체 근무까지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당국은 북한의 위협보다 군대 복무의 ‘교육적 효과’를 의식하는 것이다. 내무반에서 병장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아첨을 떤 경험이 있는 사나이라면, 재벌 주인이나 국가 관료에게 ‘말대꾸’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한국 지배층의 상식인 듯하다.
- 박노자의 ‘아직도 폭력이 충만한 사회’ 중-
만약에 군대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상층부의 안일함과 지배층의 보수에 있다고 한다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들어대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워낙 군대에 기밀이 많아서 알 수가 있어야지요.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고는 하는 군대 내에서의 여러 사건들은 군대의 변화를 야기시키고는 합니다. 김일병의 사례나 변기 물을 마신 사건 등의 보도가 터져나올 때마다 군 관계자가 나와서 사과를 하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하지만 박노자씨의 말처럼 보수정권과 징병제가 있는 한 폭력에 의한 사고는 정도 완화만이 가능할 뿐 엄금할 수 없습니다. 김일병과 같은 사태는 극소수의 사례 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남성의 대부분은 김일병과 같은 세계에서 나름대로 타협을 하고 그 세계에 동화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몇 명의 신념을 가진 자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군대에 가면 군대의 불합리한 부분들을 싹 다 바꿔버리겠다.” 이 말은 “내가 북한에 가면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싹 다 바꿔버리겠다.” 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관습이나 의식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기껏 군대에 가더라도 권력구조 하에서 최대로 올라갈 수 있는 계급은 병장입니다. 병장 위의 그 무수히 많은 윗대가리 분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군내에서의 빈번한 언어적 폭력과 구타는 권력에 대한 맹종 환자들과 폭력 무기력증 환자들을 양산해 낼 것입니다.
군대와 한국사회, 그리고 여성들
한국사회는 이러한 군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아직 군 개혁의 목소리 보다는 군 입대를 사회적 의무로 마땅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수 입니다. 원빈이나 문희준 같은 연예인들이 자랑스럽게 군대에 입대하는 뉴스를 보더라도 알 수 있지요(문희준은 군 입대 후 안 좋은 이야기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또한, ‘유승준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와 ‘양심적 병역 거부’ 에 대한 논쟁을 보더라도 한국사회는 이미 사회적 의무로서의 군 입대를 당연시 하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국방의 의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 국가주의 사상 때문에 우리는 쉽사리 군 문제에 대한 제기가 어려워 집니다. 어째서 한국사회는 국가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을까요? 북한과 휴전으로 대치되어 있는 특수한 상황이 국민의 사상을 키워낸 것은 아닐 것 입니다. 이 국가주의 역시 박정희 정권부터 지금까지, 혹은 그 이전부터 국민의 단합과 통제를 위해 존립해온 하나의 정치적 수단일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주의와 군대는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은 군사주의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 영향력은 여성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군사주의와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피해는 성차별적 남성주의 문화를 들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저보다 여러분들이 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와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군대 내에서의 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군 상층부의 모습, 그리고 이 모든 세계를 용인하는 국가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토론과 논쟁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군대와 이 사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날의 군대에 대한 짧은 글을 마지막으로 저의 발제를 마칩니다.
'군대 갔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 라는 식의 말이 진리와도 같이 통용되는 우리 사회에서 '군 복무'는 대한민국의 소년이 성인 남자로 살아가는데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그 동안 사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왔던 '소년'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혹독한 계급사회에 무방비상태로 던져져 '군인'의 얼굴을 배운다. 처음에는 위계구조 말단의 피해자로,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자의 위치로 탈바꿈하는 법을 배우면서 명령과 복종의 권력관계 속에 심어진 비틀어진 남성성을 서로에게 권하고 강요한다. 군대라는 곳에선 누구나 한번씩은 피해자였고 또 가해자였기 때문에 일방적인 피해 의식이나 죄의식을 가지기보다는 단체의 행동과 룰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래서 그 시절에 보낸 인생의 시린 사춘기는 '지나고 보니 힘들고 고달팠지만 인생살이에 엄청난 도움을 준 곳'으로 기억되어야 하고 그렇게 대한민국 남자들이 공유하게 되는 '군대의 기억'은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룰이 되어 우리 사회에 또다시 경직된 위계질서를 만들어간다.
- ‘용서받지 못한 자’ 에 대한 씨네서울의 작품 평 중 -